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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로나19에 대한 윤리적·의학적·신앙적 관점

1. 코로나 사태의 지금과 앞으로의 전망

코로나19라는 대재앙이 우리의 일상을 흔든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 전의 일상이 낯설 정도로 코로나19 발생 전과 후의 세상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바이러스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세계 각국의 입장도 가지각색이었다. 재난의 당사자 대 구경꾼, 잠재적 가해자 대 잠재적 피해자의 입장에서부터 서로의 입장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어제 웃던 자가 오늘 울고, 어제 울던 자가 오늘 웃고 있는 상황인데, 이 또한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미 팬데믹으로 들어선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은 종식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예컨대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보여지는 심리반응, 즉 퀴블러로스가 말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단계 중 “부정” 반응, 즉 코로나19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2. 대중의 반응에 대한 해석

필자는 내과 의사로서, 기독교인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정치적 해석도 있지만, 지금 이 글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윤리적 관점, 과학적 관점, 신앙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는, 윤리적 관점이다. 이번 위기상황을 계기로 인간본성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코로나 확진자들에 대한 비난여론 및 신상털이로 인해 확진자들의 많은 수가 우울증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확진자들을 비난하다가도, 본인이 열이 있거나 의심증상이 있으면, 상당히 복잡한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만약 내가 확진된다면 받게 될 불이익, 타인으로부터 받게 될 비난 등이 머리 속을 스쳐가며, 결국은 ‘나는 아닐 거야’ 하며 그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거나 은폐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필자는 병원에서 감기 등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경우 정부 권고에 따라 안심병원으로 안내를 하고 있다. 한 번은 어떤 환자분이 접수대에서, 머리가 아픈데 감기일 수도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셔서 안심병원을 안내해 드리고 귀가를 시켜드렸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환자분이 화들짝 놀라며 병원 밖으로 도망을 갔다가 나중에 들어와서는 저런 환자를 들여보내면 어떻게 하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그 때까지는 이 환자분이 ‘코로나가 옮을까 많이 두려워하시는구나’ 했다. 반전은 며칠 후에 일어났다. 그 도망가는 난리를 피운 환자분이 며칠 후 병원에 들어오셔서 기침약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호흡기 증상은 정부 지침에 따라 여기서 진료가 안 된다고 하자 본인은 코로나가 아니라고 우기신다. 코로나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본인이 판단한단 말인가!

요즘 ‘내로남불’이라 하여 다른 사람은 비난하고 자신은 합리화하는 풍조가 만연한 세태 속에, 우리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하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정말로, 그렇게 안 할 수 있었을까”라고 양심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생각을 해본다면 훨씬 더 건설적이고 발전적으로 반응 할 수 있을 것이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때,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남부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 본인도 노예를 이용해 농장을 운영해야 하는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진 바로 그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의학적 관점이다.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라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굉장히 강하고, 치료법도 아직 변변치 않아 더욱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코로나 19만이 우리가 걸릴 수 있는 유일한 질병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던 질환들은 많이 있었다. 결핵의 경우도 한국이 OECD 국가 중 1위로서, 2위인 국가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많다. 결핵은 확실하게 공기로 전파되며, 치명적인 폐손상이 가능하고, 2018년 국내 결핵사망자는 1,800명, 하루 평균 확진자는 72명으로 보고된다(코로나19와 비교해 보라). 결핵은 지하철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가족이나 동료를 통해서도 옮을 수 있다. 심지어 다제내성결핵은 치료약도 없다. 그런데 기존에 대학병원 음압병상에 결핵환자가 입원해 있을 때는 아무도 그 병원을 꺼리지 않지 않았던가? 오히려 지금은 안전하게 음압병상에 코로나 감염 환자가 입원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병원에 코로나 환자 입원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사람들은 몇 개월 동안 그 병원을 안 가려고 한다. 이런 반응은 공포와 무지로 인한 비이성적인 것이다.

전염병 말고도 우리는 항상 질병의 위협을 받고 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암을 진단받는 환자, 어느 날 갑자기 루푸스가 진단된 환자 등을 많이 보게 되는 내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코로나19도 언제나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불행일 뿐이다. 기존에도 요양병원에서는 폐렴에 걸려서 사망에 이르는 분들이 상당수 있었다. 기존에는 폐렴, 결핵 등 전염병에 관심도 없었고, 기본적인 개인위생 수칙들을 지키지 않다가 최근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오히려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 지인이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온갖 동영상을 다 보면서 패닉이 되어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포에 사로잡혀서 삶에 대한 희망이 끊어져서 하는 말이 “저 유서도 썼어요”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호스피스 환자를 많이 봐 왔고 유서도 여러 번 써 본 경험도 있기에 “유서 한 번 써보시는 것도 삶에 도움이 되지요.” 하고 이야기하자 지인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내가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이야기를 해 드리자 그제서야 약간 안심을 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그분이 보았다는 유튜브 동영상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의약품 불법 거래부터 해서, 중환자실에서만 쓰는 전문용어까지 사용해 가면서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었다. 코로나19에 한번 걸리면 불구가 될 것처럼 거짓을 호도하고, 젊고 건강했던 환자가 중태에 빠지는 상황이라는 희박한 몇 개의 사례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불안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전문가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수칙 중 1번이 바로 불안이 정상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환자분 중에도 불안증이 잘 조절되고 있다가 최근 다시 악화되어 새벽 3시마다 깨서 너무 두근거리고 숨쉬기가 힘들다고 하시는 분이 있다. 항불안제를 처방해 드리면서 말씀드렸다. “그럴 때는 ‘나는 불안하다’라고 입으로 말해보세요.”

세 번째는 죽음에 대한 신앙적 해석이다. 수 십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장례를 치르곤 했고 어린 나이에 또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죽음이란 가까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 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연장되고, 죽음을 목도하는 경험이 적어짐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죽음은 낯선 현상이 되어 버렸다.

전도서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브라질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라고 하며 격리확대보다 경제를 우선시했다고 망언으로 비난받았다. 격리지속론이냐 집단면역론이냐의 논쟁이 뜨겁지만 이것을 떠나,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말 자체는 망언이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나도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를 만나는 현장에 있지만 생각보다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염병이라는 것은 나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많은 이들을 두고, 나 혼자 ‘죽어도 좋아’하면서 마음대로 다녀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의 배반이다. 또한 역병의 상황 속에서 지켜야 할 수칙을 지키지 않고 ‘나는 안 걸릴 거야’라는 믿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필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에 걸리는 죄일 것이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방역에 협조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웃들에게 걸림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죽음의 현실과 그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 준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본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회심하게 된 무신론자 의료진들의 이야기도 읽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이것이야말로 무신론자들도 부인할 수 없는 변치 않는 대전제이다. 이를 기초로, 짧던 길던 주어진 우리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가꿔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3. 우리의 자세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에 대하여, 전문가들의 의견조차 상이한 경우도 많고, 정치적인 입장이나 언론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게 해석되는 사안들도 많다. 그리고 공포와 무지 등으로 인해, 코로나라는 질병 자체보다 잘못된 대응에서 파생된 수많은 이슈들이 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정직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고 사실을 잘 판별해야 한다. 또한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환자들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편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평안한 마음으로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갖기 원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발맞추어, 이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각자가 세워야 할 것이며, 새로운 세상에서의 해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고 싶다.

김수정(내과 전문의, 성누가병원 내과 원장)